이천수 심하은 딸 국제학교 월반 자랑 프로필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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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살림남2

이천수 심하은의 딸 이주은이 국제학교에 합격했다.

20일 방송된 KBS 2TV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에는 현진영, 이천수 가족이 단합 대회를 위해 강원도 인제 여행을 떠났다.

이날 이주은 양이 현진영 부부의 반려견 코코, 블루에 관심을 보이자, 심하은은 "주은이가 성적이 오르면 강아지 키우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첫 번째 약속은 얼렁뚱땅 지나가고, 두 번째 약속은 주은이가 지켰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국제학교 레벨 테스트에서 월반해서 4학년인데 5학년으로 편입한다"고 밝히며 "아빠가 약속을 지켜야 되는데 안 지킨다"라며 이주은 양의 국제 학교 편입 소식을 전했다.

이에 현진영은 "국제 학교면 외국에서 학교 다니는 거냐"라고 엉뚱한 질문을 했고, 이천수는 수업을 영어로 하는 학교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천수는 2013년 심하은과 결혼해 슬하에 큰딸 주은 양과 쌍둥이 남매를 두고 있다.

프로필

이름

이천수

李天秀|Lee Chun-Soo

출생

1981년 7월 9일 (41세)

경기도 김포군 계양면

(현 인천광역시 계양구)[1]

거주지

인천광역시 서구 청라동 청라자이

국적

대한민국 국기

대한민국

신체

172.4cm[2], 77kg[3], A형

학력

부평초등학교 (졸업)

부평동중학교[4] (졸업)

부평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5] / 중퇴)

직업

축구선수 (공격수[6] / 은퇴)

축구행정가

축구 심판

소속

선수

울산 현대 호랑이 (2002~2003)

레알 소시에다드 (2003~2005)

→ CD 누만시아 (2004~2005 / 임대)

울산 현대 호랑이 (2005~2007)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007~2009)

→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8 / 임대)

→ 전남 드래곤즈 (2009 / 임대)

알 나스르 FC (2009~2010)

오미야 아르디자 (2010~2011)

인천 유나이티드 (2013~2015)

행정가

인천 유나이티드 (2018~2020 / 전력강화실장)

대한축구협회 (2021~2022 / 사회공헌위원장)

국가대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 78경기 10골 (대한민국 / 2000~2008)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해설자, 방송인, 유튜버.

선수 시절 포지션은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킥과 프리킥 능력이 특징이었다. 라 리가 역대 1호 한국인 선수이기도 하다.

사건사고가 은퇴할 때까지 끝없이 논란이 많았으며 k리그시절 아시아 최강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아래 후술한 것처럼 과대평가vs아시아최강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청소년 대표 시절 최태욱과 함께 투톱으로 뛰며 당시 한국 축구계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작은 체구에 뛰어난 스피드를 가졌으며 특히 공 잡고 방향전환하면서 순간적으로 가속을 붙이는 능력이 좋았다. 전성기였던 2002년 월드컵 당시 차두리만큼 빠르고 박지성만큼 많이 뛴다는 평가까지 받았을 정도다. 거기에 발재간, 정교한 크로스와 킥 능력 등으로 국가대표 경기에서 많은 활약을 펼쳤다. 다만 후술할 멘탈 문제와 자기관리 소홀로 재능을 만개하지 못한 케이스.

그러나 과대평가라는 의견도 있다. 이천수는 국내 리그득점이 두 자리수를 넘긴 적이 거의 없었고 유럽에서는 0득점에 그쳤다. 전문가들도 이천수는 2002년 월드컵이후 보여준 게 없다고 비난하기도 했으며 국가대표 기록도 고작 10득점에 불과하다.

멘탈 문제와 소홀한 자기관리에 대해서 이천수 본인은 유튜브에 자기가 게으른 천재였다는 사실은 부정했고 열심히 했다고 했다.

현역 시절 후술한 사고 때문에 벌금을 물고 출전 정지를 몇번 당해서 명성에 비해 나쁜 인간성을 가졌다고 인식되었다.

공격 포지션은 대부분 소화했지만, 가장 파괴적이던 위치는 처진 스트라이커. 이후 국가대표에서는 작은 키로 인해 최전방 공격수보다는 주로 측면 공격수로 뛰게 된다. 고종수, 나카무라 슌스케와 더불어 아시아 최고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라 할만큼 정지된 상태에서 킥 능력은 세계적이었으나, 러닝 크로스의 성공률은 생각보다 평범하다.[20] 또한 국가대표 무대에서 시원하게 돌파하는 모습이 별로 안 나오기도 했다.[21]

그럼에도 이천수가 한때 박지성과 비교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이천수의 스피드나 가속력, 방향전환 능력이 국가대표 수비수들을 상대로 상당한 우위를 가져가지 못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 분명 상당한 위협을 가할 정도는 됐다. 그런데 이천수 역시 박지성처럼 투쟁심이 엄청나서 활동량이 비록 박지성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활동량도 좋은데 공 없을 때 움직임까지 좋고, 성격 때문인지 좋을 때는 정말 과감하고 저돌적이라서 침투능력이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알다시피 킥력도 상당했다. 박지성과 이천수가 동시에 가동되는 경우 둘 다 공 없을 때 움직임과 침투능력, 활동량과 투쟁심이 강하기 때문에 상대 입장에서 대처하기 난처하고 휘둘릴 가능성이 높았다.[22]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과 골 욕심으로 말도 많은데, PK나 골을 넣을 수 있는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어낸 상황에서 전담 키커를 무시하고 자신이 공을 차려는 경우가 빈번하다.[23] 프리킥의 경우 욕심을 내는 편이나 자신보다 잘 찬다고 인정하는 선수라면 굳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지만 이천수의 킥 능력은 아시아 원톱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고 이을용, 고종수 등 톱클래스 왼발잡이 키커들을 제외하면 당시 국내선수 중 이천수만큼 프리킥을 잘차는 선수가 손에 꼽을 만큼 적었기에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다.[24] PK의 경우 2006년 일본 A3 도쿄대회[25]에서 실축하고 나선 다시는 차지 않겠다고 말했다. 여담으로 울산 현대는 그 경기에선 PK 실축으로 J리그 제프에게 2-3으로 패했지만, 다음 경기인 도쿄에서 니시노 아키라[26]의 감바 오사카전에서 이천수의 헤트트릭을 기록하며, 6-0으로 대승리[27]하고 우승했다.

두번의 유럽진출은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두번의 울산현대 시절의 이천수는 그야말로 언터처블. 아시아 최고의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멘탈적으로도 무시무시한 선수였는데, 사건 사고에 자주 연루되는 악영향도 있지만 그 똑같은 멘탈이 필드 위에서는 흔히 전설로 얘기되는 파올로 말디니 뒤통수 후려차기[28]와 같이 스포츠맨 정신에 어긋나 해외에서 많은 비난을 받은 행위도 있었으나, 2002 월드컵 미국전에서 PK를 자청하던 모습 혹은 2006 월드컵 스위스전에서의 투혼과 눈물처럼 국내 국대 팬들에게는 긍정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29]

긍정과 부정 양 측면이 국내 선수에게는 유례가 드물 정도로 공히 두드러지니, 이런 류의 멘탈이 거의 천부적이란 걸 생각하면 이 선수의 선수 생활이 끝나감에 이르러서 못내 아쉬운 감은 금할래야 금할 수가 없다.[30] 다행히 말년인 인천 유나이티드 시절에는 술집 폭행 사건을 제외하고는 정말로 갱생한 듯 사고가 크게 줄었으며, 특히 말년에 고향 팀 인천에 대한 충성심은 당시 설기현의 통수질로 분노가 극에 달한 인천 팬들에게 위안이 될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실력의 수준은 좀 차이가 있겠지만 안토니오 카사노와 커리어가 묘하게 비슷하다.[31] 또한 체력과 활동량도 최상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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