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철 감독 투수운용 팬들 비난 무슨일 한일전 대패 1라운드 탈락 경우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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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1일, 2023 WBC 한국 대표팀을 이끌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21년 한국 시리즈 우승팀 감독이다 보니 선임 명분은 충분하지만, 현직 KBO 리그팀 감독으로써 시즌 준비에 한창일 3월달에 국가대표팀을 이끌게 되면서 이에 대한 우려섞인 kt팬들의 반응이 있다. 마치 2013년 류중일과 비슷한 상황이다 보니 야구팬들의 우려도 많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해할수 없는 투수 교체, 대타 타이밍과 운영으로 WBC 예선 첫 경기 호주전에서 패배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일본과의 2차전도 이해하기 힘든 투수 운용으로 대패하는 데에 큰 원인이 되었다. 결국 꼭 잡아야 할 1차전에 안 쓰고 아낀 컨디션 좋은 투수들을 2차전 승부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쓰는 등의 어이없는 운용으로 사실상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 기정 사실화 되었다.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No.71★

kt wiz No.71 ★

이강철 프로필

李强喆[2]/ Lee Kang-Chul

출생

1966년 7월 12일[3] (56세)

광주광역시 북구

국적

대한민국 국기

대한민국

학력

서림초 - 무등중 - 광주일고 - 동국대

신체

180cm, 78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언우타

프로입단

1989년 1차 지명 (2순위, 해태)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 (1989~1999)

삼성 라이온즈 (2000~2001)

해태-KIA 타이거즈 (2001~2005)[4]

지도자

KIA 타이거즈 2군 투수코치 (2006~2007)

KIA 타이거즈 1군 투수코치 (2007~2012)

넥센 히어로즈 1군 수석코치 (2013~2016)

두산 베어스 2군 투수코치 (2017)[5]

두산 베어스 2군 감독 (2017)[6]

두산 베어스 1군 수석·투수코치 (2018)

kt wiz 감독 (2019~ )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 해태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의 투수로 활약했으며, 은퇴 후 코치 생활을 거쳐 2019년부터 kt wiz 감독을 맡고 있다. 2023 WBC 대한민국 대표팀의 감독을 겸임한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범현과 함께 트리플 크라운 달성 감독이다. 해태 타이거즈 왕조 시절 우승을 이끌고 1996년 한국시리즈 MVP까지 받았으며,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는 타이거즈의 투수코치로 V10을 이끌었고, 선동열호/2018년에서 투수코치를 맡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을 견인했으며, 2021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강철매직으로 kt의 첫 우승까지 이끌었다.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까지 우승하면 조범현과 함께 그랜드 슬램 달성 예정인 감독이다.그런거 없다

현재 2023 시즌 기준 KBO 리그 최고령 1군 감독이다

선동열의 별명이 무등산 폭격기였다면, 이강철의 별명은 "무등산 핵잠수함"이었다. 특유의 물 흐르는 듯한 부드러운 투구폼으로 당시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언더핸드 투수로 유명했다.

전성기 시절 빠르지 않은 130km/h 중후반대의 구속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 해설자들의 단골 레퍼토리가 '이강철의 속구가 속도는 느리지만 우완 정통파 투수의 140km/h대 패스트볼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을 정도로 속도에 비해 위력적인 속구를 뿌렸다. 이강철의 주무기는 떠오르는 패스트볼이었는데, 낮게 깔려서 오다가 대략 포수 머리 근처 또는 약간 높은 정도의 범위에서 형성되었다. 당시에는 이 볼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제대로 들어가면 타자는 맞추기도 어려운 마구급 구질이었지만, 반대로 홈런을 맞기도 쉬웠다. 또한 언더핸드답게 공 끝의 움직임이 상당히 변화무쌍했고, 커브와 슬라이더는 당대에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던 구질들이었다. 특히 이강철의 주무기였던 슬라이더는 남아있는 영상을 보면 살짝 떠오르면서 우타자 바깥쪽이나 좌타자 몸쪽으로 예리하게 휘어져 들어가는데, 이강철이 선발로 오래 기용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슬라이더가 당시 좌타자들에게 잘 먹혀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언더핸드 투수들의 주무기로 많이 이용되는 싱커는 별로 안 던졌는데, 많이 맞아나가서인지 당시 배터리를 이루던 장채근과의 상의 끝에 봉인했다고 한다.# 사실 이강철의 플레이 스타일이 삼진을 잡는 데 맞춰져 있어 땅볼 유도에 효과를 보이는 싱커를 쓸 필요는 크게 없었다. 그래도 별로 안 던졌다 뿐이지 주력 구종 중 하나였는데, 주로 삼진을 잡기 힘든 선수를 처리하거나 투구 패턴에 변화를 주기 위해, 혹은 체력 소모를 막기 위해 쓰곤 했다. 싱커 자체도 꽤나 훌륭했던지라 당시에도 최고의 싱커볼 투수로 정평이 나 있었다. 여기에 이강철은 완급조절에 있어서도 리그 수준급으로, 다른 타이거즈 에이스들에 비해 떨어지는 구위를 완급조절을 통해 커버하는 영리한 투구를 보여주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구위가 떨어지는 나이에도 선수로 뛰며 롱런할 수 있었다.

언더핸드 투수지만 땅볼을 유도하진 않았고, 슬라이더와 직구의 변화각과 완급 조절을 이용해서 삼진을 많이 잡아내던 투수이기도 했다. 언더핸드 투수 중 이닝 대비 탈삼진율이 매우 높은 게 그 증거. 그래서 선동열, 정민철, 주형광처럼 괴물 같은 탈삼진 능력을 가진 투수들이 리그를 호령하던 1990년대에도 심심찮게 탈삼진 순위에 이름을 올리던 투수였고,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중 최다 탈삼진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통산 최다 탈삼진 기록을 갖고 있는 송진우보다 앞서 통산 최다 탈삼진 기록을 세웠다는 것은 특기할 점이다.[8]

다만 당시 대표적 홈런 공장장 중 하나가 이강철이었데, 통산 218개의 피홈런을 맞아 통산 3위에 올라와 있다. 투고타저 시기에 주로 활동했음에도 홈런공장장이라는 별명이 있었을 정도. 하지만 언더핸드는 투구폼 특성상 배팅볼로 던져주는 각도와 비슷한데다 구속도 다른 폼에 비해 느리다 보니 피홈런에 매우 취약하다. 이 때문에 이강철에 앞선 언더핸드 에이스였던 한희민 역시 8시즌 동안 104홈런을 맞아 홈런 공장장이라는 오명이 붙곤 했다. 더군다나 유독 이강철의 피홈런은 임팩트 있는 경우가 많아 더욱 그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는 편이다. 김기태와 이승엽의 프로 커리어 첫 홈런을 허용했고, 2004년 준플레이오프에서 홍성흔에게 만루홈런을 맞고 나서는 빵 사건이 일어났다. 다만 피홈런이 많은 것은 그만큼 오래 뛰고 많이 던질 기회를 받았기에 그런 측면도 있다. 실제 이강철은 통산 이닝도 2204⅔이닝으로 KBO 3위다, 간단히 말해 많이 던졌으니 그만큼 홈런 맞는 빈도수도 많았던 것이다. KBO 최다승, 최다 이닝 투수인 송진우가 최다패, 최다 피홈런 투수인 것과 비슷한 이치다.

KBO 리그에서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해본 세 사람중 한명이다. 나머지 둘은 조범현, 김원형. 다만 아직 한 팀 유니폼만 입고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우승 반지를 껴본 사례는 아직 전무하다.[22]

KBO 리그 선수 출신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 중 유일하게 현역 시절 한국시리즈 MVP 수상자 출신이다.

1996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인 그해 11월에 축하 기념으로 KBS 예능 프로그램 가족오락관에도 출연했다.

선수 시절 때부터 한국시리즈 MVP를 거머쥐는 등 선동열, 이대진 등과 함께 해태 왕조를 대표한 투수로 활약했었는데 감독으로써도 kt의 통합우승을 이끌면서 현재 KBO 감독 중 현역 시절 커리어도 독보적으로 뛰어난데[23][24] 감독으로서도 성공신화를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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