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전설 장미란 나이 키 몸무게 체급 학력 용인대학교 교수 직업 인스타 올림픽 프로필 (+유퀴즈 방송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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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도의 전설 장미란 선수의 이야기를 다시, 제대로 듣는다.

장미란 프로필

대한민국의 前 여자 역도 선수이자, 現 용인대학교 체육학과 교수다.

대한민국 여자 역도 사상 최고의 기록을 세웠으며, 2004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다.

張美蘭|Jang Miran

출생

1983년 10월 9일 (나이39세)

고향 강원도 원주시

국적

대한민국

 

본관

인동 장씨

학력

상지여자중학교 (졸업)

원주공업고등학교 (전기과 / 졸업)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 학사)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 석사)

켄트 주립대학교 대학원 (스포츠행정학 / 석사)

용인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 박사)

신체

키170cm, 몸무게 115kg[현역시절], A형

종목

역도

체급

+75kg

현직

장미란재단 이사장

용인대학교 체육학과 교수

종교

개신교(예장합동)

가족

아버지 장호철, 어머니 이현자,

여동생 장미령, 남동생 장유성

은퇴

2013년

어린 시절

역도 선수 출신 아버지와 학창 시절 학교 계주 선수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여동생과 남동생도 역도 선수였으며, 어머니의 권유와 다이어트 때문에 역도를 시작했다.

다만 어린 마음에 역도를 하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했던 장미란은 1주일 동안 어머니가 주는 음식도 먹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002년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75㎏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국제 무대에 등장했다.

2004년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75㎏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사실 당시 장미란이 마지막 시기 도전을 성공한 직후까지만 해도 거의 금메달이 확정적인 분위기였는데, 중국의 탕궁홍이 금메달에 도전하기 위해 다소 무리하게 무게를 올려서 도전했고,[8] 용상에서 위태롭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겨우겨우 버텨냈고, 그것이 성공으로 인정되면서 장미란이 분패하게 된 것이다.

다만 어느 나라이든 금메달의 가치는 은메달/동메달보다 훨씬 크고, 또 동메달의 가치도 4위 이하보다 훨씬 큰 법이기 때문에 조금 무리하더라도 높은 기록에 도전한 것 자체는 있을 수 있는 일이나, 문제가 된 것은 실패로 판정 받아도 무방했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수준으로 성공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다만 당시 이 사건은 기계체조 남자 개인종합에서 일어난 양태영 오심사건에 묻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이 점은 사실상 실패라고 봐도 될 정도로 논란이 많았다. 당시 세계역도연맹(IWF) 총재였던 타마스 이얀이 경기 직후 해당 심판진을 비난하면서 "진정한 금메달은 장미란"이라고 언급했지만, 결국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어쨌든 이 당시 은메달을 수상한 성적을 바탕으로 장미란은 2005년 고려대학교에 체육특기자 전형으로 입학했다.

2005년

2005 세계선수권 여자 +75㎏급 용상과 합계에서 우승했다.

2006년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는 인상에서 139kg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운 중국의 무솽솽에게 합계 2kg을 뒤져 은메달을 획득했다.

2008년

라이벌 무솽솽이 불참한 가운데 여자 75kg+ 급에서 인상 140kg, 용상 186kg을 들어올려 종전 세계 신기록보다 3.5kg이 많은 합계 326kg으로 인상, 용상, 합계 모두에서 새로운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며 우승했다. 해당 경기는 많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이전까지는 올림픽에서 한동안 금메달 6개 이후 은메달만 획득하고 있었는데, 장미란이 이걸 드는 순간 인터넷의 반응은 몇 분 전까지 '징크스라고 했던 걸 씹어먹듯이 치워버리네' 였다. 당시 그녀가 얼마나 압도적이었냐 하면 2위의 기록이 277kg으로 49kg의 차이.

용상 때는 장미란이 신청한 1차시기 기록이 워낙 높아 은메달 차지한 선수까지 3차 시기까지 모두 끝난 후에야 유유히 등장.

물론 1차시기 성공 후 금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장미란의 우승이 워낙 확정적이라 은메달이 확정된 선수가 장미란이 용상 시도를 하기도 전에 마치 우승을 한 듯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장미란이 획득한 메달은 대한민국 여자 역도 사상 첫 금메달이며 현재까지 유일한 금메달이다. 그녀 이후 대한민국 여자 역도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 외에 77kg급의 사재혁이 금메달을 땄고 53kg급의 윤진희도 은메달을 수확하면서 대한민국 역도는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은메달리스트인 올하 코로브카와 동메달리스트인 마리야 그라보베츠카야가 모두 2016년 IOC의 도핑 샘플 재조사 과정에서 금지약물 양성 판정으로 메달이 박탈되면서 약쟁이들을 오로지 실력으로 무찌른 셈이 되었고, 이 때문에 더더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폐회식에서는 대한민국 선수단의 기수로 선정되었다.

2010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인상에서는 130㎏으로 중국의 멍쑤핑에게 뒤졌지만, 용상에서 181㎏을 들어올려 만회했다.

결국 합계 311㎏으로 멍쑤핑과 동률을 이뤘지만, 몸무게가 가벼웠으므로 규정에 따라 승리했다. 더욱이 이 날의 우승은 2010년 초에 있었던 교통사고+허리디스크 재발+훈련 부족 크리로 사실상 2010년에 대회 자체를 출전하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도 무리였음에도 이루어낸 쾌거라 더욱더 값진 결과였다.

더욱이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이전에 열린 세계선수권에서는 부상 이후 회복이 덜 된 상태라 코치와 관계자들이 뜯어말리는 가운데 참가를 강행해 3위로 동메달을 따내며 대회를 마쳤다.

이때 본인이 출전을 강행한 이유는 '1위는 못하지만, 그래도 출전해서 순위를 높이면 다른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권을 지킬 수 있으니까'라고 답하였다.

시합이 끝나고 장미란의 아버지가 관중석을 향하여 큰 절을 한 사진이 중국 신문에 실리면서 한국과 중국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최중량급 여자 역도 선수 중에서는 체격이 작다. 최중량급쯤 되면 기본적으로 체격이 크고 무거운 쪽이 유리하게 되어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불가사의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탕궁훙&무솽솽&멍쑤핑 등등 장미란의 라이벌이었던 중국 선수들을 보면 장미란의 2배 가까이 된다.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도 이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자신보다 2배는 큰 여자 선수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은 게 언론에 나왔을 때 팬들이 '언니가 제일 예뻐요'라고 하자 '얘네들 사이에서 제일 예쁘다는 게 칭찬인가 욕인가' 라며 농담을 하는 부분이 있다.

2012년

2012 런던 올림픽 때는 대부분의 스포츠 도박 회사들에서 장미란의 노골드를 예상했고, 좀 높게 예상한 도박사들은 은메달을 예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실제로 28살에 동 체급에서 가장 언더 사이즈이고, 치고 올라오는 신예들의 기록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세운 세계신기록 3개 중 인상 기록과 통합 기록은 2010년 이후 떠오른 신예들이 갱신한 상황이었다.

이 외에도 부상 문제 등으로 메달을 따기 곤란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결국 그녀는 기량이 예전보다 좋지 않아 경기 당시엔 상당히 선전했음에도 경쟁자들의 기록이 워낙 좋았던 탓에,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2016년 7월 28일 국제역도연맹은 2012 런던 올림픽에 참가한 역도 선수들의 도핑 테스트 결과 11명이 양성으로 나타났고, 이 중 6명이 메달리스트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 중에는 무제한급 동메달리스트인 흐리프시메 쿠르슈디안(아르메니아)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만약, 이게 확정되면 4위인 장미란이 동메달을 받게 되는 상황이었다.

2016년 11월 21일 IOC는 공식적으로 도핑 혐의로 12명을 제재한다고 발표했고, 그 명단에 쿠르슈디안도 포함되었다.

참고로, 제재 대상자 12명 중에서 무려 9명이 역도 선수였다. 결국 쿠르슈디안의 도핑 적발로 그녀는 뒤늦게 동메달을 받게 되었다.

은퇴 이후

2012 런던 올림픽 이후에도 전국체육대회에서 10년 연속 3관왕을 차지하는 등 여전히 한국에서 1인자임을 보여 줬지만, 2013년 1월 8일 기사를 통해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은퇴 이후에는 학업과 장미란재단의 업무를 통해 계속 후원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후 2020 도쿄 올림픽에 재단 장학생으로 올림픽 출전 선수가 배출되었다.

2015년 용인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이듬해 체육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이후 2017년 미국 오하이오주 켄트 주립대로 다시 유학을 떠나 스포츠행정학 석사를 취득하고 복직하였다.

2013년 8월 인터뷰에서 20kg 이상 감량한 근황이 포착되었다. 6년이 지난 2019년 6월 KBS2 '생방송 아침이 좋다'에서 근황이 포착되었다. 은퇴한 이후로는 운동을 쉬어서인지 근육과 살이 많이 빠져 비운동인 체격에 가까워졌다. 은퇴 이후 몰라보게 체격에 변화가 온 것으로 보아 선수 시절에 체격을 유지하기 위해 매우 고생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2021년 용인대학교 교내 인터뷰를 통해 최근 모습을 공개하였다. 그는 교육자로서 학생들이 이해하기 편한 수업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면서, 자신 역시 끊임없이 공부하고 많은 지식을 쌓아 어떻게 쉬운 언어로 학생들에게 전달할지 늘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3년 이창섭이 진행하는 웹예능 전과자 9화 용인대학교 편에서 교수로 출연하였다.

이때 역도 데드리프트를 강의했는데 실습 중 '어디가서 저한테 배웠다고 그러실거면서 그렇게 하면 어떡해요.'라며 하드 트레이닝 과정에 예능감을 적절히 섞어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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