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0년간 쿠바 정부의 스파이로 활동하다 최근 발각된 빅터 마누엘 로차 전 주볼리비아 미국 대사. 미국 법무부는 로차 전 대사가 쿠바 정보기관 요원으로 위장한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에게 자신이 했던 스파이 활동에 대해 “그랜드슬램 이상”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을 4일 공개했다. 미국 법무부 제공
미국 국무부에서 20년 넘게 일하며 주볼리비아 미국 대사까지 지낸 전직 외교관 빅터 마누엘 로차(73)가 40년간 쿠바의 비밀 요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드러나 기소됐다.
그는 1990년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쿠바를 포함한 중남미 담당 국장으로 일했다.
비슷한 시기 쿠바 수도 아바나의 스위스대사관 내에 개설됐으며 사실상 미국 대사관 역할을 했던 미국 이익대표부의 부대표도 맡았다.
쿠바 스파이가 백악관 한복판까지 침투했다는 점이 드러나자 미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메릭 갤런드 법무장관은 “외국 정보 요원이 미 정부의 가장 고위직에,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침투한 사례”라고 우려했다.
미국 법무부는 로차 전 대사를 간첩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고 4일 밝혔다.
1950년 남미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했고 1978년 시민권을 획득했다.
예일, 하버드 등 미 명문대 학위를 바탕으로 1981년 11월 국무부에 입부해 2002년 8월까지 일했다.
주볼리비아 미국대사를 끝으로 퇴직했고 2006~2012년 쿠바를 관할하는 미군 남부사령부 고문도 맡았다.
연방검찰은 공소장에서 그가 국무부 발령 첫 해부터 최근까지 쿠바 정보기관인 총첩보국(DGI)을 위해 기밀 정보를 수집했다고 밝혔다.
겉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을 지지하는 우익 인사인 척 행세했지만 실제로는 미국을 ‘적’으로 지칭하고 쿠바의 공산 혁명을 주도한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칭송했다.
은퇴 후 중남미계 이민자가 많은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거주하던 로차 전 대사는 지난해 자신을 수상쩍게 여긴 미 연방수사국(FBI)의 비밀 수사관이 DGI 요원으로 위장해 접근하자 덜미를 잡혔다.
그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이 FBI 수사관을 DGI의 마이애미 주재 요원으로 믿고
“40년 가까이 쿠바를 위해 간첩으로 일했다”고 실토했다.
이 수사관은 로차 전 대사를 만날 때 로차 전 대사가 DGI에서 교육 받은 대로 우회로를 이용하고 중간에 멈춰 미행하는 사람이 없는지 살피는 등 완전히 쿠바 요원인 양 행세했다.
FBI 수사관이 로차 전 대사에게 국무부에는 어떻게 들어갔는지 묻자 그는
“긴 과정이었고 쉽지 않았지만 본부(DGI)가 함께 했다”고 답했다.
국무부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쿠바에 포섭됐다는 뜻으로 풀이된다.